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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정원을 ‘가꾼다’고 말한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생명을 키워내는 일, 그것은 분명 숭고한 노동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정원을 바라보길 권한다. 흙을 만지는 농부의 마음 대신, 공간을 지휘하는 큐레이터의 눈으로. 나의 마당을 **‘지붕 없는 갤러리’**로 만드는 상상에서부터 정원 일은 다시 시작된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그 전시의 ‘테마’다. 정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무작정 예쁜 나무를 사다 심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먼저 정해야 한다. ‘소나무와 돌이 나누는 침묵’이라던가, ‘물과 그림자가 노니는 오후’처럼 한 줄의 콘셉트가 섰을 때, 정원은 비로소 혼란을 벗고 질서를 찾는다. 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과감히 덜어내는 용기, 그것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첫 번째 미덕이다.
갤러리의 관람객이 되어 마당을 거니는 상상을 해본다. 입구에서 현관까지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전시 동선’이다. 길은 때로 좁아져 긴장감을 주었다가, 일순간 넓어지며 시야를 터트려야 한다. 그 극적인 변화 속에서 방문객은 마치 새로운 전시실에 입장하는 듯한 설렘을 느낀다.
발걸음이 멈추는 곳, 혹은 거실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시선 끝에는 반드시 ‘메인 작품’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수석도 놓고 싶고, 화려한 꽃도 심고 싶겠지만, 갤러리의 벽면이 하얗게 비어 있듯 정원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굽은 소나무 한 그루, 혹은 잘생긴 바위 하나만 오롯이 두고 주변을 비워보라. 배경이 단순해질수록 그 나무는 식물이 아닌 하나의 고귀한 조각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 또한 절제되어야 한다. 훌륭한 작가는 수만 가지 색을 쓰지 않는다. 정원 역시 나무, 돌, 바닥재라는 두세 가지 재료의 반복과 변주만으로도 충분히 깊어진다. 같은 소재가 크기와 위치를 달리하며 리듬을 만들 때, 공간은 산만함을 잃고 통일감 있는 품격을 갖춘다. 여기에 바닥의 마감 선과 담장의 라인을 액자처럼 반듯하게 정리해 준다면, 그 안의 자연은 더욱 정갈한 그림이 된다.
해는 기울고 계절은 흐른다. 이 자연의 섭리조차 갤러리 정원에서는 훌륭한 연출이 된다. 아침의 볕과 오후의 그림자가 어디에 떨어지는지 살피는 것은 조명 감독의 역할이다. 밤이 되면 몇 개의 포인트 조명만 켜두어라. 어둠 속에 떠오른 나무 한 그루는 낮과는 전혀 다른 ‘야간 전시’의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봄의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앙상한 가지는 그 자체로 계절마다 바뀌는 기획 전시다. 화분이나 조형물의 위치를 조금만 바꿔주어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정원을 갤러리처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자연을 감상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종이 한 장을 꺼내 우리 집 정원의 제목을 적어보자.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며 가장 보고 싶은 풍경 하나만을 남기고 비워보자. 그 순간, 당신의 마당은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될 것이다.